※ 이 글은 2022.05.17에 작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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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조(신의성실) ①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②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1. 신의성실(신의칙)이란?
당신의 친구가 어느 날 찾아와서는 건설 사업에 돈이 필요해서 1억원을 빌려달라고 했고, 당신은 1년 뒤에 1억원을 빌려주기로 하고 2년 뒤에 갚기로 하는 계약서를 써 주었다. 그런데 6개월 후 친구의 회사를 찾아갔더니 그 회사는 파산 직전인데다가 건설 사업은 진행은 커녕 계획조차 되지 않았고, 거기에다가 회사 내에서 내분이 발생해서 앞으로 사업이 진행 될 가능성이 젼허 보이지 않아 돈을 빌려줬다가는 못 돌려받을게 뻔한 상황이다. 이를 본 당신이 친구에게 '미안한데 돈 못 빌려주겠다'고 하자, 그 친구는 계약서를 들이밀면서 계약대로 1억원을 빌려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이 경우 당신은 못 돌려받을 것이 뻔한데도 1억원을 빌려줘야 할까? 상식적으로 너무 부당하지 않은가?
이럴 경우 민법 제2조(신의성실)이 해법이 될 수 있다. 민법 제2조 제1항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는 조문의 의미는 상식적으로 남의 뒤통수 치지 말라 혹은 남의 신뢰를 져버리지 마라는 말로 함축할 수 있다. 만약 이러한 조문이 없다고 생각해보자. 자기한테 권리가 있다고 남한테 무제한적으로 피해를 주는 짓을 하고서는 '내 권리 행사한건데 어쩌라고!'라고 해 버리면 과연 사회가 제대로 돌아갈까?
판례는 아니지만, 이전에 방송3사에서 나왔던 사건 중 설명에 적합한 사건이 있었다. 모 할머니의 주택 옆에 빌라가 들어섰는데, 그 할머니는 자신의 집에서 보던 경치가 훼손되었다며 빌라를 철거하라고 요구했다. 당연하지만 할머니 땅에 세워진 빌라도 아니므로 빌라 측에서는 이를 무시하였다. 그러자 할머니는 그 빌라에 사람들이 못 살게 하겠다면서 자신의 땅 중 빌라에 가까운 쪽에 자기가 기르던 개의 오물들을 모아 쌓아두기 시작했다. 이에 빌라 주민들은 냄새 때문에 해당 방향의 창문을 열지 못하는 등 피해가 생긴다면서 오물을 치울 것을 요구했는데, 할머니는 내 땅에 내가 쌓아둔 것이므로 내 권리를 행사했을 뿐이라는 주장을 하였다. 내 기억이 옳다면, 이 사건의 할머니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고 결국 집행되어 해당 오물들을 치운 것으로 알고 있다.
이 사건처럼 권리가 있다고 이를 무제한으로 인정해버리면 타인에게 피해를 줄 염려가 있다. 따라서 민법에서는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을 통하여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을 성실히 하도록, 또한 권리를 과도하게 휘두르지 않도록 조율하고 있다.
여담으로, 나중에 배우겠지만 사실 위의 할머니와 같은 사건은 '상린관계'라 하여 민법에서 별도로 위와 같은 행위를 제한하고 있다. 이는 물권법의 소유권 부분에서 자세히 다루게 된다.
2. 신의성실의 원칙의 파생원칙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은 이와 같이 '내 권리 행사한건데 어쩌라고!'같은 남의 뒤통수를 치는 행동을 막아준다. 그러면 여기서 문제가 생긴다. 그 '뒤통수 치는 행동'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법학자들은 이를 학문적으로 4가지의 갈래로 나누어서 분류해두었다. 그것이 바로 신의칙의 파생원칙이다.
신의칙의 파생원칙 4가지는 각각 모순행위금지의 원칙(금반언의 법리) / 실효의 원칙 / 사정변경의 원칙 /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으로, 각자의 요건이 있고 그 요건을 만족하여야 한다. 물론, 반드시 하나의 파생원칙에만 걸려야 하는 것은 아니므로 판례들을 접하다 보면 한 사건임에도 여러 파생원칙에 걸리기도 한다. 지금부터는 모순행위금지의 원칙부터 시작하여 차근차근 하나씩 배워가도록 하자.
3. 모순행위금지의 원칙(금반언의 법리)
모순행위금지의 원칙(금반언의 법리)는 말 바꾸지 말라는 뜻으로 쉽게 설명할 수 있다. 보다 정확히는 ① 누가 보더라도(=객관적으로) 여태 해 온 말이나 행동이 지금의 말이나 행동과 모순되어 ② 그런 짓을 인정하면 애초의 말이나 행동을 믿어 온 상대방이 피해를 볼 인과관계가 있어야 한다.
대법원 1989. 9. 29. 88다카19804 판결의 사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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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회사는 근로자 B가 장기간 아무 이유 없이 출근하지 않자 장기간 무단결근을 이유로 B를 해고한 후 퇴직금을 지급1)하였다. 근로자 B는 이에 아무런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이를 수령하였고, 이를 확인한 A 회사도 B가 그 해고가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러나, B는 8개월 후 갑자기 A 회사의 해고는 무효라며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이 사건에서 위와 같은 근로자의 행동은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며 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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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정확한 사실관계는 근로자에 직접 지급한 것이 아니라 법원에 공탁하였고, 근로자가 공탁금을 조건 없이 수령하였다. 공탁은 상대방이 금전을 수령받기를 거절하거나, 누구한테 지급해야 할 지 알 수 없을 경우 법원에 돈을 맡겨놓는 제도로 이해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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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88다카19804 판결은 대표적인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이 적용된 판례이다. 근로자를 회사에서 해고하였을 때 ① 근로자가 아무런 이의 없이 퇴직금을 수령했고, ② 회사도 근로자가 이를 인정했다고 신뢰하였는데 뒤늦게 해고의 무효를 주장하였으므로 정확히 위의 조건을 만족하여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의 또 다른 판례를 보자.
대법원 1986. 10. 14. 86다카204 판결의 사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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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지자체에서 원래는 민간에 판매해서는 안되는 재산인 행정재산으로 등록된 땅을 A에게 팔고는 그 땅을 공적 목적으로 사용을 폐지1)하였다. 그런데 20년 뒤 지자체에서 갑자기 A를 찾아와서는 그 땅은 원래 판매할 때 민간에 판매하면 안되는 행정재산이었으니 판매가 무효라며 땅을 돌려달라고 하였다.
법원은 ① 이제 더는 공적 목적으로 쓰일 수도 없고, ② 지자체도 애초에 그 땅을 팔 당시에 행정재산임을 알면서 팔았을 것이며, ③ A도 그 땅의 매매가 적법할 것이라 믿고 샀을 것이므로 이제 와서 땅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라며 A의 손을 들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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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이를 보고 '공용폐지'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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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6다카204 판결도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이 적용된 예시로 교과서나 시험에서 자주 등장하는 예시이다. ① 공용폐지되어 더는 공적으로 쓰지도 못하는데다 지자체도 애초에 행정재산임을 알면서 팔았을 것이고, ② A도 적법하게 샀다고 믿었을테니 20년이나 뒤에 땅을 돌려달라고 하는 것은 신의칙에 반하는 권리행사라고 법원이 본 케이스이다.
물론, 그렇다고 모든 말 바꾸기가 모순행위금지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다음 판례를 보자.
대법원 1999. 3. 23. 99다4405 판결의 사실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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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 투자신탁회사에서 고객에게 '만약 투자금에서 손해가 발생해도 이를 보상해주겠다.'며 먼저 고객에게 제의하여 고객을 펀드1)에 가입시켰다. 그러나 사실 이는 증권거래법(현재의 자본시장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계약이었고, 이를 알게 된 투자신탁회사에서 고객에게 그 가입의 무효를 선언하였다. 그러자 고객은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을 내세워 투자신탁회사에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강행법규에 위반하여 무효인 수익보장약정이 투자신탁회사가 먼저 고객에 제의해 체결되었더라도, 만약 여기서 신의칙을 적용해 투자신탁회사의 주장을 배척하면 이는 오히려 법에서 금지하는 행위를 인정해줘버리는 결과를 초래하므로 신의칙에 반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여 투자신탁회사의 손을 들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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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정확히는 펀드가 아니고 투자신탁회사에서 고객에게 유가증권을 매각한 케이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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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이 사건에서는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이 인정되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강행법규를 위반하였기 때문이다. 법령의 규정에는 ① 당사자 합의로 다르게 정할 수 있는 임의규정과 ② 당사자 합의로도 절대 바꿀 수 없는 강행규정이 있는데, 위의 판례에서 언급한 투자수익약정은 (구) 증권거래법에서 금지하고 있는 강행규정이었다. 이 경우 아무리 회사 측에서 먼저 제의한 계약이라 해도 신의칙을 이유로 인정해줘 버리면, 법에서 금지하는 계약을 법에서 인정하게 되어 말만 강행규정이지 아무런 효력도 없게 되어 버린다. 이 때문에 법원에서 고객 측의 신의칙 주장을 인정하지 않은 것이다. 이 판례를 보아 알 수 있듯,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을 적용할 때에는 ③ 강행규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닐 것이라는 전제가 붙어있어야 한다.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을 정리하자면, 다음 3가지 요건을 갖출 것으로 볼 수 있다.
① 누가 보더라도(=객관적으로) 여태 해 온 말이나 행동이 지금의 말이나 행동과 모순될 것.
② ①과 같은 짓을 인정하면 애초의 말이나 행동을 믿어 온 상대방이 피해를 볼 인과관계가 있을 것.
③ 강행규정을 위반하는 것이 아닐 것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에 대한 판례는 워낙 많기 때문에 모든 판례를 일일이 외울 수는 없다. 따라서 문제를 풀면서 위의 요건들을 검토할 능력을 길러야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을 올바르게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4. 실효의 원칙
A : 너한테 빌렸던 돈 1천만원 언제 갚으면 될까?
B : 아~ 그거? 에이... 친구끼리 돈이 문제야? 안 갚아도 돼! 갚지마~ A : 정말 안 갚아도 돼? B : 안 갚아도 돼. 20년지기 친구끼리 1천만원이 문제야? ~ 10여년 뒤 ~ B : A야... 그때 너가 나한테 빌려갔던 돈 지금 갚아줄래? A : ?? 그때 안 갚아도 된다고 했잖아? 게다가 지금 돈 없는데... B : 어쨌든 나한테서 돈 빌려갔잖아! 이자까지 쳐서 갚아! |
실효의 원칙에 해당하는 대표적인 예시이다. 이런 짓을 인정해 줬다가는 A는 당연히 안 갚아도 될 줄 알고 있었던 돈 1천만원에 이자까지 붙여서 갚아야 되므로 B의 권리 남용으로 인해 A가 피해를 보게 된다. 이러한 짓을 막기 위해 실효의 원칙이 존재한다. 실효의 원칙은 ①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충분했는데도 상당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고, ② 더는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신뢰를 준 뒤에 권리행사를 한 경우, 그런 권리행사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즉 위와 같은 경우 ① 권리행사를 10여년 동안 하지 않았고, ② 안 갚아도 된다고 말해 신뢰하게 해 놓고 뒤늦게 갚으라고 요구한 것이므로 B의 요구는 실효의 원칙에 걸려 허용되지 않는다.
실효의 원칙도 위의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처럼 적용되는 예가 있고, 적용할 수 없는 예가 있는데, 먼저 적용되는 예를 보도록 하자.
대법원 1996. 11. 26. 95다49004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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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자신에 대한 징계면직처분에 대하여 재심청구를 하였으나 기각되자 회사가 자신의 급여구좌에 입금한 해고예고수당을 반환하기 위하여 이를 공탁까지 하였다가 그 후 아무런 이의 없이 회사로부터 퇴직금을 수령하고 그 후로는 부당노동행위구제신청을 하는 등으로 징계면직처분을 다툼이 없이 다른 생업에 종사하여 오다가 징계면직일로부터 2년 10개월 가량이 경과한 후 제기한 해고무효확인의 소는 노동분쟁의 신속한 해결이라는 요청과 신의성실의 원칙 및 실효의 원칙에 비추어 허용될 수 없다고 본 원심판결을 수긍한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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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잡해보이고 가독성이 다소 떨어지는 판결요지이지만(저게 전부 한 문장이다), 모순행위금지의 원칙에서 다룬 88다카19804 판결과 그 내용이 비슷하다. 회사에서 근로자를 해고한 뒤 회사에서 퇴직금을 지급하자 아무 이의 없이 이를 수령해놓고 2년 10개월 뒤에 그 해고가 무효라며 소를 제기한 케이스이다. 기간만 8개월, 2년 10개월로 다를 뿐 88다카19804와 판결과 판박이이다. 이 판례의 사실관계에서 보다시피, ① 권리를 2년 10개월이나 행사하지 않았고, ② 퇴직금을 수령하였으니 더는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신뢰를 준 뒤에 권리행사를 하였으므로, 위의 실효의 원칙에 따라 해당 권리행사를 허용하지 않았다.
반면, 이번에는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판례이다.
대법원 2001. 11. 27. 선고 2001므1353 판결의 사실관계 요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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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떤 남자 A, 여자 B가 결혼하고 이후 사정이 생겨 이혼한 뒤, 생업을 살던 B는 우연히 남자 C를 알게 되었고, C는 자신의 아내 D가 난치병에 걸려 있으므로 D가 사망하게 되면 결혼하자고 B에게 말하였고, B는 이를 믿고 C와 동거하다가 E를 임신하고 출산하였다. 그런데 C의 아내 D가 나중에 이를 적발하였고, B와 C의 관계는 청산되었다.
[2] 이후 C는 E를 부양하는 B를 위해 양육비를 지급하였고, 이후에도 E가 취직하여 결혼할 때 까지 취직처를 알선해주고 결혼식에 참석하는 등 지속적인 도움을 주었다. [3] E는 C를 만나 식사를 하며 자신의 호적을 제대로 정리해 줄 것을 요청하였고 C는 이를 승낙하였으나, 이후 C가 사망하는 바람에 이루어지지 않았다. E는 C의 장례식에 참석하였고, 이후 D에게 자신의 호적을 제대로 정리해달라고 요구하였으나 D가 이를 거부하자 E는 인지청구권1)을 행사하며 소를 제기하였다. 법원은 인지청구권은 본인의 일신전속적인 신분관계상의 권리로서 포기할 수도 없으며 포기하였더라도 그 효력이 발생할 수 없으므로 인지청구권의 포기가 허용되지 않는 이상 거기에 실효의 법리가 적용될 여지도 없다고 하여 원고 E의 손을 들어주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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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혼인 외의 출생자가 생부나 생모에 대해 가정법원에 자신과 그 생부 또는 생모와의 사이에 친자관계를 형성하거나 확인해 줄 것을 청구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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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관계가 복잡하므로 요약하자면, 불륜으로 태어난 E가 이후 자신의 생부와 지속적으로 교류하며 호적을 정리해 줄 것(=자신을 아들로 인정해 줄 것)을 요청하였으나, 생부가 이를 진행하지 못하고 사망하자 그 아내 D에게 이를 요청하였다가 거부당하자 인지청구권을 행사한 사례이다. 이때 법원은 일신전속적(=오직 본인만이 행사할 수 있는) 신분관계의 권리는 성질상 포기할 수도 없는 것이므로 권리의 효력이 사라진다는 내용인 실효의 원칙이 적용될 사항이 아니라고 보았다. 즉, ③ 일신전속적인 신분관계의 권리는 실효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음을 알 수 있다.
실효의 원칙을 정리하자면, 다음 3가지 요건을 갖출 것으로 볼 수 있다.
①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충분했는데도 상당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을 것
② 더는 권리행사를 하지 않을 것이라는 합리적인 신뢰를 준 뒤에 권리행사를 할 것
③ 일신전속적인 신분관계의 권리가 아닐 것
5. 사정변경의 원칙
사정변경의 원칙은 ① 법률행위(예: 계약)의 기초가 된 사정의 현저한 변경이 있고 ② 당사자에게 귀책사유나 이를 미리 예견할 가능성이 없어서 ③ 기존의 내용을 그대로 할 경우 너무 형평에 어긋날 경우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권리이다. 만약 그 계약의 수정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계약을 해제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문제는 판례이다. 판례에서는 이를 매우 엄격하게 인정하고 있기 때문에, 단순하게 일방 당사자에게 불리한 정도로는 인정되지 않는다. 즉, 계약 기초가 된 객관적 사실을 말하지, 일방의 주관적이거나 개인적인 사정은 해당사항이 없다.(대법원 2007. 3. 29, 2004다31302)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는 예시는 다음 63다452판례에서 볼 수 있다. 판례가 그리 어렵지 않으니 굳이 설명을 부가하지는 않겠다.
대법원 1963. 9. 12. 63다452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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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매계약을 맺은 때와 그 잔대금1)을 지급할 때와의 사이에 장구한(=상당한) 시일이 지나서 그 동안에 화폐가치의 변동이 극심하였던 탓으로 매수인이 애초에 계약할 당시의 금액표시대로 잔대금을 제공한다면 그 동안에 앙등한 매매목적물의 가격에 비하여 그것이 현저하게 균형을 잃은 이행이 되는 경우라 할지라도 민법상 매도인으로 하여금 사정변경의 원리를 내세워서 그 매매계약을 해제할 수 있는 권리는 생기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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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계약에서 지급하는 잔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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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근보증(미래에 발생할 채무에 대해 보증을 서는 것)과 같은 계속되는 계약에 대해서는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는 판례가 존재한다.
대법원 1990. 2. 27. 89다카1381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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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의 임원이나 직원의 지위에 있기 때문에 회사의 요구로 부득이 회사와 제3자 사이의 계속적 거래로 인한 회사의 채무에 대하여 보증인이 된 자가 그 후 회사로부터 퇴사하여 임원이나 직원의 지위를 떠난 때에는 보증계약성립 당시의 사정에 현저한 변경이 생긴 경우에 해당하므로 사정변경을 이유로 보증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고 보아야 하며, 위 계속적 보증계약에서 보증기간을 정하였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특히 퇴사 후에도 보증채무를 부담키로 특약한 취지라고 인정되지 않는 한 위와 같은 해지권의 발생에 영향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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즉, 회사의 요구로 근보증을 선 사람이 퇴사하게 되면 그 기초되는 사정에 현저한 변경에 해당하여 위 계약을 해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리하자면, 사정변경의 원칙을 적용하기 위하여는 다음 3개의 요건을 모두 만족하여야 한다.
① 법률행위(예: 계약)의 기초가 된 사정의 현저한 변경이 있을 것
② 당사자에게 귀책사유나 이를 미리 예견할 가능성이 없을 것
③ 기존의 내용을 그대로 할 경우 너무 형평에 어긋날 것
또한,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될 경우 ① 계약의 내용을 수정할 것을 상대방에게 요구할 수 있고, 만약 그 계약의 수정을 상대방이 받아들이지 않을 경우 ② 계약을 해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다.
여담으로, 이 글을 작성하는 시점(22.05.16)에는 사정변경의 원칙이 적용된 눈에 띄는 사례는 위의 근보증계약이 대다수이다. 즉, 시험 문제에서는 사정변경원칙의 요건이나 효과, 근보증계약의 경우 해지가능하다는 논점 위주로 출제될 가능성이 높으니, 시험을 위하여 이 포스트를 읽는 분들은 참고하기를 바란다.
6. 권리남용금지의 원칙
다시 민법 제2조를 보자.
제2조(신의성실) ①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②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은 민법 제2조 제2항을 이야기하는 것으로, 조문 그대로 권리를 남용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구체적으로, 어떤 권리의 행사가 권리남용이 되기 위하여는 ① 권리가 존재하여 행사되어야 하고, ② 그것이 사회질서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타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객관적 요건과, 상대방을 해할 목적(=가해목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는 주관적 요건이 있다. 이에 대하여 판례는 원칙적으로는 객관적, 주관적 요건 모두가 필요하지만, 만약 객관적 요건이 충족된다면 주관적 요건도 충족된다고 보고 있다. 단, 예외적으로 상계권의 남용에 대하여는 주관적 요건이 필요 없다 보는 등 몇몇 경우에 예외가 있다.
판례를 직접 보면 이해가 쉬울 것이다. 쉬운 판례이므로 별도의 설명은 생략한다.
대법원 1998. 6. 26, 97다42823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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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리행사가 권리의 남용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으려면, 주관적으로 그 권리행사의 목적이 오직 상대방에게 고통을 주고 손해를 입히려는 데 있을 뿐 행사하는 사람에게 아무런 이익이 없는 경우이어야 하고, 객관적으로는 그 권리행사가 사회질서에 위반된다고 볼 수 있어야 하는 것이며, 이와 같은 경우에 해당하지 않는 한 비록 그 권리의 행사에 의하여 권리행사자가 얻는 이익보다 상대방이 잃을 손해가 현저히 크다 하여도 그러한 사정만으로는 이를 권리남용이라 할 수 없고, 다만 이러한 주관적 요건은 권리자의 정당한 이익을 결여한 권리행사로 보여지는 객관적인 사정에 의하여 추인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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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법원 2003. 4. 11. 2002다59481 판결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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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사자가 상계1)의 대상이 되는 채권이나 채무를 취득하게 된 목적과 경위, 상계권을 행사함에 이른 구체적·개별적 사정에 비추어,그것이 위와 같은 상계 제도의 목적이나 기능을 일탈하고, 법적으로 보호받을 만한 가치가 없는 경우에는그 상계권의 행사는 신의칙에 반하거나 상계에 관한 권리를 남용하는 것으로서 허용되지 않는다고 함이 상당하고, 상계권 행사를 제한하는 위와 같은 근거에 비추어 볼 때 일반적인 권리 남용의 경우에 요구되는 주관적 요건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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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채무자가 그 채권자에 대해 동종의 채권을 가지는 때에 그 채권과 채무를 대등액에서 소멸시킬 의사표시를 할 권리. 쉽게 설명하자면, 서로 빚을 지고 있을 때 서로 없던걸로 하자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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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어떤 권리의 행사가 권리남용으로 인정된다면, 법은 더 이상 그러한 권리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물론 권리 행사가 인정되지 않을 뿐이고 권리 자체는 남아있게 된다. 다만, 친권의 남용과 같은 법률 규정이 따로 있는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그 권리 자체를 박탈할 수 있다.
다음은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 적용된 대표적인 사례이다.
대법원 1999. 9. 7. 선고 99다27613 판시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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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력공사가 정당한 권원에 의하여 토지를 수용1)하고 그 지상에 변전소를 건설하였으나 토지 소유자에게 그 수용에 따른 손실보상금을 공탁2)함에 있어서 착오로 부적법한 공탁이 되어 수용재결이 실효됨으로써 결과적으로 그 토지에 대한 점유권원을 상실하게 된 경우, 토지 소유자가 그 변전소의 철거와 토지의 인도를 청구하는 것은 권리남용에 해당한다고 본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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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공익을 위해서 국가나 공공단체가 사인이나 기업 등의 물건, 또는 그 소유권 기타 권리를 강제적으로 취득하는 것
각주 2) 쉽게 설명하자면, 법원에 돈을 맡겨두었다는 뜻. |
이 판례를 설명하자면, 한전에서 어떤 땅에 변전소를 짓기 위하여 그 땅의 소유자에게 땅을 구매할 의향을 표시하였으나, 그 땅의 주인이 거절하자 그 땅을 국가에서 수용하고는 그 돈을 공탁하였다. 그런데 공탁에는 일정 절차가 있는데, 그 절차가 잘못되어 그 땅의 소유권이 다시 그 땅의 소유자에게 돌아오게 되었다. 문제는 여기서 발생한다. 이미 그 땅에 변전소가 설치되어 영업중이었던 것이다. 이때, 그 땅의 소유자는 이미 영업하고 있는 변전소를 철거하고 그 땅을 반환할 것을 요구하였다.
이제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의 적용을 위해선 위에서 언급하였듯 ① 권리가 존재하여 행사되어야 하고, ② 그것이 사회질서에 비추어 보았을 때 타당하지 않아야 한다는 객관적 요건과, 상대방을 해할 목적(=가해목적)으로 행사하여야 한다는 주관적 요건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이제 위의 사례의 권리남용금지 원칙 적용 여부를 파악해보자. 우선, ① 땅의 소유권은 그 소유자에게 있고, ② 변전소 철거로 인하여 주변 지역에 전기를 공급할 수 없는 등 사회적 피해가 극심하므로 객관적 요건을 충족하였고, 본인에게는 별다른 이익이 없지만, 한전에게는 변전소 철거비용이 드는 등 가해목적임이 확실하므로 주관적 요건까지 모두 충족하였다. 즉, 토지 소유자의 변전소 철거 청구는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에 위배되어 허용될 수 없다는 것이다.
7. 민법 제2조 정리
다시 민법 제2조를 읽어보자.
제2조(신의성실) ① 권리의 행사와 의무의 이행은 신의에 좇아 성실히 하여야 한다.
②권리는 남용하지 못한다.
이제 우리는 민법 제2조의 조문을 읽으며 중요한 논점을 짚어낼 수 있다. 정리하자면,
① 민법 제2조는 '상식적으로 남의 뒤통수 치지 말라' 혹은 '남의 신뢰를 져버리지 마라'는 내용인 신의성실의 원칙을 의미한다.
② 민법 제2조의 신의칙의 파생원칙은 총 4개로 모순행위금지의 원칙(금반언의 법리) / 실효의 원칙 / 사정변경의 원칙 /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이 있다.
③ 모순행위금지의 원칙(금반언의 법리)는 객관적으로 기존의 언행이 지금과 일치하지 않고, 이전의 언행을 믿은 상대방이 피해를 볼 인과관계가 있고, 그것이 강행규정에 반하지 않을 경우 그러한 행위는 허용되지 않는다는 원칙이다.
④ 실효의 원칙은 권리를 행사할 가능성이 충분했음에도 상당 기간 동안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고, 더는 권리행사를 하지 않으리라는 합리적 신뢰를 준 뒤에 일신전속적 신분관계상의 권리가 아닌 권리를 행사한 경우 그러한 행위는 허용할 수 없다는 원칙이다.
⑤ 사정변경의 원칙은 법률행위의 기초가 된 사정의 현저한 변경이 있고, 당사자에 그 귀책사유나 예견가능성이 없으며, 기존의 내용을 그대로 할 경우 너무 형평에 어긋날 경우 계약 내용의 수정을 제의할 수 있고, 이를 거절하면 계약을 해지할 것을 요구할 수 있는 원칙이다.
⑥ 권리남용금지의 원칙은 권리는 남용할 수 없다는 것으로, 권리의 행사가 사회질서에 반하지 앟아야 한다는 객관적 요건과, 가해목적 행사여야 한다는 주관적 요건이 모두 충족되어야 하나, 객관적 요건이 충족되면 주관적 요건도 충족되며, 상계권과 같은 몇몇 권리의 남용은 주관적 요건이 필요 없다는 예외적인 경우가 존재한다.
위의 정리에서 보다시피, 민법 제2조의 신의성실의 원칙은 겉보기에는 단 두 줄짜리 조문이지만 실제로는 국가법령정보센터에 기록된 판례들로만 (작성시점 기준)1000개가 넘을 정도로 매우 중요한 조문이다. 이 포스트에서 소개한 판례가 유명한 것들만 소개해서 비교적 적어보일 뿐이다. 또한, 민법의 신의성실의 원칙은 다른 법들의 신의성실의 원칙의 기초가 되는 만큼 다른 법을 공부하는 사람들은 더더욱 주의 깊게 공부하여야 할 것이다.
다음 포스트부터는 민법상 권리의 주체(자연인과 법인) 중 자연인의 의사능력과 행위능력, 제한능력자를 다루게 된다. 해당 조문들은 민법 제3조~제17조, 22조~30조에서 다루므로 여태 포스트와는 다르게 이제부터는 하나의 조문을 집중적으로 배우는 것이 아니라, 타 조문들까지 함께 배우게 된다. 그렇다고 난이도가 어려운 조문은 아니므로 차근차근 배워가면 어렵지 않을 것이다.
민법 제2조(신의성실) 연습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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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신의성실의 원칙(신의칙) 및 권리남용에 관한 설명으로 옳은 것은? (다툼이 있으면 판례에 따름)
(2021년 세무사시험 1차 민법 41번)
①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이 신용구매계약을 체결한 미성년자가 사후에 법정대리인의 동의 없음을 이유로 이를 취소하는 것은 신의칙에 위배되지 않는다.
② 채무자의 소멸시효에 기한 항변권의 행사는 신의칙의 지배를 받지 않는다.
③ 신의칙은 당사자의 주장이 없으면 법원이 직권으로 판단할 수 없다.
④ 권리의 행사에 의하여 얻는 이익보다 상대방에게 발생할 손해가 현저히 크다는 사정만으로도 권리남용이 된다.
⑤ 채권자가 유효하게 성립한 계약에 따른 급부의 이행을 청구하는 때에 법원이 신의칙에 따라 급부의 일부를 감축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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